밀양사람

'밀양이요? 그 밀양? 영화 밀양?'

2021-08-31

글 쓰는 게 좋았다. 몇 번이나 목으로 올라왔다 꿀꺽 넘어가던 말들이 글로서는 편안했다. 살펴볼수록, 여러 번 들여다볼수록 괜찮은 모습을 찾아가는 ‘글’이라는 방식이 좋기도 했고. 매그진의 첫 번째 글은 가장 나다운 것을 쓰고 싶었다. 나의 정체성이 곧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밀양이다. 첫 번째 글감은 밀양.

여름날 아침 영남루는 정말 근사하다. 

‘밀양이요? 그 밀양? 영화 밀양?’  

내 이름은 손혜민이고, 직업은 디자이너예요. 그리고 고향은 밀양이랍니다. 첫 만남에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면 보통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근데 밀양이 어디죠? 전라도인가? 어디 근처죠? (부산 근처예요) 와, 정말 머네요. 집 갈 때 어떻게 가요? 몇 시간 걸려요? 근데 뭐가 유명해요?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빽빽한 (밀) 볕 (양) 인구 10만 명, 일찍이 문화가 발달하여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부산과 대구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다른 지역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근대화 과정이 빠르게 이루어졌다,라는 소개가 있다. 가볼 만한 곳으로는 영남루,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트윈 터널, 얼음골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나의 이름, 나의 직업보다 나의 고향, 오직 나의 고향만이 사람들 귀에 남는가, 생각해 본적 있다. 밀양이 인상적인가? 아니면 저 멀리 서울에서 350km 떨어진 곳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서울까지 와서 먹고 살고 있는 게 신기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어디서 한번 들어봤으니 우리 이야기해보자꾸나, 일까. 앞으로 나와 처음 만나게 될 사람들은 말해주면 좋겠다. 왜 우리의 대화는 늘 밀양으로 시작되는지 정말 궁금하니깐.

다시 짚어본다. 영화 <암살>을 본 적이 있는가? 배우 조승우 첫 대사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 한마디에 극장에 앉아 혼자 내적 울컥함과 감동을 느낀 나는 밀양 사람 손혜민이다. 밀양은 나에게만 특별하다. 내 고향이라서 그렇다. 다른 이유는 없다. 간단하다. 여름마다 뉴스에 등장했던 대구에 비해, 말이 필요 없는 국밥과 드넓은 바다가 있는 부산에 비해 그 사이쯤 위치한 밀양의 유명한 것을 물어보는 말에는 음…이 길어진다. 그래도 특별했던 것들을 떠올려 줄줄이 읊다 보면 나에게만 각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쓱해지는 순간이 온다.

남천강 플라이 낚시

왜 밀양이 좋은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예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보았던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전시 글귀가 떠올랐다. 어느 곳을 가든 밀양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기다렸는데 네가 지금 와서 보는구나.’ 

밀양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원래 그곳에. 물 흐르듯 툭툭. 밀양의 모든 것들은 무심하게 놓여 있고 과하지 않으며 자연스럽다. 밀양역에 내려 숨을 들이마시면 느껴지는 냄새조차 자연自然스럽다. 20년 넘게 밀양에 살았지만 요즘 새롭게 만나는 오래된 풍경들이 많다. 

일상이 어색할 때마다 밀양에 갔다.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순간을 만나더라도 다시 나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곳이 밀양이었다. 한 해가 시작되면 늘 기대된다. 봄 위양못 이팝나무, 여름 얼음골 계곡, 가을 표충사 단풍, 겨울 남천강에서 얼음낚시 하는 사람들까지 보고나면 자연스레 사계절 느끼며, 일년 건강하게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혜산서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 sns에서 알게 되었다.

이제야 밝히지만 이 글은 밀양에 대한 소개 글이 아니다. 자 여러분 밀양에 도착하면 여기 여기 가보시고, 여기 식당에서 이거 먹어야 해요, 알고보면 굉장히 멋지고 근사한 도시이니 여러분들 어서 놀러오시라, 는 글이 아니다. 감탄이자 자랑, 그리움에 관한 글이다. 그냥 우리집 고양이 자랑합니다, 보고가세요, 밈 같은 글이다. 밀양 가고 싶다, 다음주에 또 갈까, 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다. 

그래도 슬쩍 말해본다. 서울을 기준으로 밀양을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KTX를 타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 서울역 10시 20분 기차를 탄다면 2시간 19분 후 밀양에 내린다. 내리면 먼저 숨을 한번 크게 쉬어보자. 흐읍. 역 앞 버스를 타고 영남루에서 내리거나 천천히 가곡동을 구경하며 삼문동까지 걸어보자. 걷다가 내가 좋아하는 곳에 그냥 멈춰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가도 된다. 자연스럽게. 9월이 곧이다. 이 맘 때 트위터에 떠도는 글이 있다. ‘드디어 시작됐다. 밤에 같이 걷기만 해도 사랑에 빠지는 저녁.’ 아쉬운 계절 다 가기 전에 자주 걷자. 이왕이면 밀양에서. 

그리고 밀양에는 아리랑도 있다. 밀양 BGM이다.

<밀양 아리랑>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