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lmore 필모어

오늘은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필모어라는 동네 관한 이야기

2021-09-08

필모어 스트릿

저번 글을 이어서 두 번째 샌프란 이야기를 쓴다. 오늘은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필모어라는 동네 관한 이야기이다. 샌프란시스코 안에서 몇 번 이사를 했지만 모두 JapanTown 안에 Fillmore St이라는 동네에서 이사를 다녔다. 필모어는 Lower Haight라는 동네에서 Marina District까지 남에서 북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미국은 보통 Avenue, Street, Boulevard 등의 이름으로 길 이름을 명명하는데 익숙해지면 길 찾기가 매우 쉽다. 한 가지 팁이 라면 택시를 탔을 때 교차지점에 두 거리를 말해주면 쉽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Geary and Fillmore 이렇게 하면 기사님이 알아서 잘 가준다. 혹시 말하기 너무 떨리거나 무서우면 목적지를 찍고 가는 Uber나 Lyft를 타는 걸 추천한다. 아무튼 필모어는 샌프란시스코의 나름 유명한 음식점, 바, 샵 등이 모여있는 나름 힙한 동네이다. 한국으로 생각해 본다면 가로수길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필모어 스트릿
Alta Plaza Park

필모어에 계속 살았던 이유는 학교가 가까워서도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미국의 여유로움(?)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어서였던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의 여유로움을 딱 한 가지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어렸을 때 영화나 TV에서 보던 막연한 생각들일 거다. 사실 필모어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전혀 미국스럽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커다란 홀 세일 마트나 마당이 넓고 잔디가 깔려있는 넓은 단독주택.. 그런 보통의 미국의 느낌은 전혀 아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 자체가 그렇다. 빼곡하고 따닥따닥 붙어 지어져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들과 다운타운에 높은 빌딩들을 보면 홍콩이나 마카오 같은 도시들이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있고 Little Italy라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동네도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정말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이 섞여있는 melting pot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여기가 미국인지 아시아의 한 도시인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필모어 중에서도 내가 소개하고 싶은 곳은 Alta Plaza Park이다. 수업이 끝나면 일부러 이곳에 앉아서 누워있다가 집에 가기도 하고 굳이 여기까지 와서 밥을 먹기도 했었다. 이곳에 오면 다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오는 것 같아 편안했다. 애착이 많이 가는 공원이다.  Pacific Haights라는 동네에 있는 공원인데 이곳에 오르면 샌프란시스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놀이터도 있고 공원에서 가끔 생일 파티나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은 내가 지인들이 방문하면 항상 첫 번째로 데리고 오는 장소인데 장시간 비행과 낯선 환경에 긴장을 풀고,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샌프란시스코 다운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일몰 직전에 도착하면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공원에서 나와 뒤쪽으로 눈을 돌리면 엄청난 내리막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오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금문교, 높은 언덕, 그리고 그 언덕을 오르는 케이블카이다. 미국처럼 평지가 많은 축복 받은 땅에서 30도에 가까운 언덕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평소에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걸 무서워하는 나는 매일 마주하는 이 언덕이 마냥 멋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저 언덕을 힘들게 내려오면 태평양을 마주할 수 있다. Marina라는 동네인데 아마 제일 평화스러운 동네가 아닐까 싶다. 금문교와 멋진 요트들이 정박해있는 멋스러운 곳이다. 친구들이 오면 우리 집에서 짐을 풀고 Marina까지 쭉 걸어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이지만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필모어가 가장 샌프란시스코를 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곳이라고 자부한다.

샌프란은 인디안 서머가 지나고 지금쯤 여행하기 가장 좋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미세먼지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떠날 때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과감하고 미련 없이 떠났지만, 오늘도 이렇게 사진을 열어보면서 추억한다. 더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다녀와야겠다.